초록재, 분홍재

 

 

 

분홍치마, 초록 저고리 입은 신부는 마냥 즐거워 어쩔 줄 몰라한다.

바지, 적삼에 댓님 맨 신랑은 잔뜩 긴장하여

두근거리는 가슴을 움켜 쥔다.

 

석양에 해는 지고, 첫 날 밤의 신방은 고요함이 깃든다.

신부의 이글거리는 눈동자, 그 강렬한 표정에 신랑은 몹시 긴장한다.

 

신부의 요염한 모습에 겁이 나기도 했다.

신랑은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 방을 나서는데,

적삼의 옷 고름이 문설주에 걸려 넘어졌다. 

 

신랑은 순간, 신부의 요염하고 음탕한 행위로 오인하고,

겁이나 줄 행랑을 쳤다.

숲을 지나 강을 건너고, 낯선 마을을 따라 밤 새도록 달렸다.

멀리 더 멀리 도망쳤다.

 

그로부터 40년 후, 우연히 옛날 그 고을 신부의 집을 스치다가

호기심에 신방을 보게 되었다.

 

신부는 옛날 애띤 모습 그대로 앉아 있었다.

애틋한 마음에 신부를 쓰다듬으니, 

 

저고리는 초록재로, 치마는 분홍재로 변하고,

그 고운 신부의 몸은 우수수 지고 말았다.

 

중년의 사내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,

초록재 분홍재를 모아 동백꽃 곱게 핀, 남쪽 양지 바른 곳에 묻고

홀연히 먼 길을 떠났다.

 

<심야 음악방송 중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이 울려 퍼진 후 아나운서의

카랑카랑한 음성을 기억하면서......  소재 : 서정주 시에서>

 

 

Tchaikovsky - Symphony No.6 in B minor, Op.74 'Pathetique'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Posted by yyjung2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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