초록재, 분홍재
분홍치마, 초록 저고리 입은 신부는 마냥 즐거워 어쩔 줄 몰라한다.
바지, 적삼에 댓님 맨 신랑은 잔뜩 긴장하여
두근거리는 가슴을 움켜 쥔다.
석양에 해는 지고, 첫 날 밤의 신방은 고요함이 깃든다.
신부의 이글거리는 눈동자, 그 강렬한 표정에 신랑은 몹시 긴장한다.
신부의 요염한 모습에 겁이 나기도 했다.
신랑은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 방을 나서는데,
적삼의 옷 고름이 문설주에 걸려 넘어졌다.
신랑은 순간, 신부의 요염하고 음탕한 행위로 오인하고,
겁이나 줄 행랑을 쳤다.
숲을 지나 강을 건너고, 낯선 마을을 따라 밤 새도록 달렸다.
멀리 더 멀리 도망쳤다.
그로부터 40년 후, 우연히 옛날 그 고을 신부의 집을 스치다가
호기심에 신방을 보게 되었다.
신부는 옛날 애띤 모습 그대로 앉아 있었다.
애틋한 마음에 신부를 쓰다듬으니,
저고리는 초록재로, 치마는 분홍재로 변하고,
그 고운 신부의 몸은 우수수 지고 말았다.
중년의 사내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,
초록재 분홍재를 모아 동백꽃 곱게 핀, 남쪽 양지 바른 곳에 묻고
홀연히 먼 길을 떠났다.
<심야 음악방송 중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이 울려 퍼진 후 아나운서의
카랑카랑한 음성을 기억하면서...... 소재 : 서정주 시에서>
Tchaikovsky - Symphony No.6 in B minor, Op.74 'Pathetique'
'문학 - 명화 음악 시' 카테고리의 다른 글
사랑할 수만 있다면 (0) | 2013.01.30 |
---|---|
내 모든 것 그대에게 주었으므로 (0) | 2013.01.29 |
나 그렇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(0) | 2013.01.26 |
사랑의 순수함을 위하여 (0) | 2013.01.25 |
들꽃 여관에 가 묵고 싶다. (0) | 2013.01.23 |